제목 : 목격자
번호 : 22 작성자 : 김광연 작성일 : 2013-03-21 조회수 : 3623

우리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내에는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스파와 사우나가 있는 큰 목욕탕이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용공간이다 보니 가끔은 인상을 찌부리게
되는 광경도 보이지만, 나름대로 피곤을 풀고 짧은 힐링을 하기에는
편리한 공간입니다.


남자들이 이용하는 곳에는 목욕 후에 얼굴에 바르도록 스킨과 로션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용수칙에는 분명히 얼굴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바디로션처럼 온몸에 쳐 바르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도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을 온가족이 몸전체에 도배를
하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꾹 참고 못 본 척 합니다.
오늘은 욕실을 나와서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60대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 한명이 로션이 꽉 찬 병 하나를 나무 평상 위
자기 앉은 자리 옆에 두고 온몸 아니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바르고
있었습니다.
모른 척 하였지만 거울너머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런지 주위를
살피는 듯 하다가 갑자기 로션과 수건을 들고 일어나서는 락카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걸어가면서 마술사처럼 수건으로
로션을 살짝 덮어 씌워서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주위를 다시
살피다가 저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불편한 목격이 되고 그 사람에는 위기일발의 발각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자신이 너무
민망하여 오히려 못본척 태연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나의 태도에 안도 하였는지 수건안에 로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제
가 모르는 것으로 자의적 판단을 하였는지 자기 락카에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서 어설픈 마술사처럼 로션은 남겨두고 수건만
절묘하게 벗겨내고 있는 있었습니다.
놀랍고 당황스러워 고개를 돌리면서 일전에 관리하는 아저씨가
"물건이 자주 없어져서 곤혹스럽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흘려들었던
기억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작은평형(33평)도 7~8억정도 하는 중산층 이상의 거주
단지에서 그런 좀도둑이 있겠느냐? 는 나의 생각이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목격한 관계로 바로 그사람을 붙잡고 증거물과 함께
잘못을 지적하며 창피를 줄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행위자체는 더럽
게 싫고 미웠지만, 그사람에게도 양심이 있다면 그 이후의 모습이 얼
마나 곤혹스럽고 창피하며 죽고싶은 심정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
니 그런 장면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의 연출은
내가 주연이 되어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기에 애써 고개를 돌렸습니
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로션하나를 훔치기 위하여 얼마나 마음 졸이
고 긴장하였을까? 라고 좀 전의 장면을 되돌려 생각하니 그가 오히려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다시 보니 얼굴의 인상조차도 늘 뭔가 쫒기고 살아온
사람처럼 편하지 않은데다 신경쇠약증까지 있는 사람처럼 마르고
볼품없는 가련한 몸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비겁하고 비루하게 훔치고 속이고 살았는지?
아님 어떤 이유로 갑자기 살림이 어려워져 이런 것까지 훔쳐야
하는 지경까지 내몰렸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도 모르게
"주여 저 죄인을 용서하소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
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
서 구하소서 아멘" 주기도문의 끝부분만이 자꾸 떠 오르는 것이었습니
다.


목격자로서 저의 행동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떠나서 저는 그분을
심판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옵니다. 아무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듯이 다만 그분의 진정한 뉘우침과 후회, 그리고
새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스스로 구원하고 구원 받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할뿐입니다.


집에 가져가서 본인의 화장대위에 놓여 있을 로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전리품을 보면서 만족하고 행복할까요? 마음이
께름칙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고 몰래몰래 양심에 덧칠하듯
바를 때만 꺼내 놓을까요.


주여!!! 작은 욕망에 사로잡혀 눈앞의 것에만 집착하고 안달복달
하며 불멸의 생명인 영혼의 평화로운 안식은 순간순간 잊어버리고,
물질과 육신의 노예가 되어 사는 우리 불쌍한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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