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휴를 보내며...
번호 : 22 작성자 : 김광연 작성일 : 2014-02-03 조회수 : 2862

구정연휴를 맞이하며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한동안 찾지 못했던 미술관을 가기로 작정했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경복궁 앞에 근사한 모습으로 건립되어
개관전을 하고 있어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안선생과 아들놈까지 동반하여 서울로 달려가는 고속도로가 평소와
달리 뻥! 뚫려있어 역시 서울나들이는 명절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이나,구정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에 넓직하게 잘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시실로
올라가니 무료관람일이어서 그런지 연휴라서 그런지 아님 복합적인
요인인지 꽤 많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현재 전시는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작품으로 서도호가 제작한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으로서 1991년 작가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 디자인에 유학 중
거주했던 3층 주택을 실물크기로 재현하고 건물의 중심엔 예전에
살았던 성북동의 전통 한옥집인 '서울집'이 매달린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 다른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인 최우람작가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옴브라'는 1층 공간의 높은 천정에 매달려 스스로 빛을 뿜으며,
서서히 움직이는 기계생명체의 모습으로, 수많은 산업페기물과
쓰레기더미 속에서 전기에너지를 먹이삼아 각종 금속과 모터, 회로
등의 부품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형태로서, 기계문명의 발달과 삶의
주도권을 기계에게 빼앗기고 종속되어 있는 것 같은 우리 인간들의
의심과 기계문명의 끝없는 진화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미지의
생명체의 탄생을 예고하며,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초반,독일의 신표현주의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와 미국 등
일련의 형상적/서사적 회화작품들의 국제적 전시를 부르던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를 차용한 작품전과 복잡성이라는
감수성과 네트워크 이론을 시각화하는 디자이너,큐레이터,건축가,
뉴미디어 아티스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고 협력하며 관객까지
참여하는 장르를 뛰어넘는 신미술 프로젝트인 '알레프 프로젝트'까지
둘러보고 1층과 지하 정원에 있는 이우환,김정숙 작가의 조각과 설치
작품까지 보고나니 허기져 있던 문화의 공복이 조금 채워져 기분좋은
엷은 포만감을 살짝 느꼈다.
미술관을 나와 옆에 있는 학고재에 들러 조환씨의 작품전까지 보면
디저트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에구구 휴관이어서 아쉬운
입 맛만 다시고 돌아서면서, 외부에서 서울관을 이루고 있는 각
건물들의 묘한 조화를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의 친인척을 담당했던 종친부 건물인 전통한옥,
1913년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으로 지어져, 1970년대 이후부터 악명
높던 전두환의 권력탄생의 산실이 되기도 했던 보안사령부의 붉은
벽돌 건물, 그리고 아이보리색 테라코타와 유리 커튼월의 현대식
건물 등 상이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품은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나즈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설날 일찌감치 차례를 마치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숙제인
<근현대회화 100선전>을 보기 위하여 덕수궁으로 향했다.
명절이라 고궁 입장료는 무료라니 웬 횡재냐는 기분이 들었다.
두번이나 전시회를 다녀 온 안선생에게 이것으로 시간 보내라고
스마트폰을 건네주고 전시장으로 입장. 20세기에 활동한 57인의
작가들 작품중 수묵채색화가 30점,유화가 70점으로 제1전시실에는
1920~30년대 작품,2전시실에는 1940~50년대 작품,3전시실에는
1950~60년대 작품,4전시실에는 1960~70년대 작품이 걸려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도 있지만 각기 다른 소장자나 기관에서
빌려온 작품들도 다수가 있어 앞으로 다시 이런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회를 개최 한다는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더 많은 관람
객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빨래터' 장욱진의 '가로수' 천경자의 '길례
언니' 이인성의 '해당화' 임직순의 '모자를 쓴 소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김환기의 '영원의 노래' 오지호의 '남향집' 김기창
의 '아악의 리듬'등 그야말로 호화로운 잔치상에 잘차려진 음식들
처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지나칠수 없는 작품들에 모처럼 눈호강을
실컷하고 잘 정화된 반짝이는 안구의 감사인사를 받으며 전시장을
나섰다.


오랫만에 덕수궁에서 시청앞 가설스케이트장을 지나 을지로쪽으로
걸어 가면서 30년전의 직장생활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려 졌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 있는 영화관에 올라가보니 역시 설은
예나 지금이나 영화 보러가는 날인지 인산인해. 인파속에 줄울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줄 제일 앞에서 전화예약한 좌석이 팔려버렸다고
어떤 여자분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매니저 오라고 해,돌겠네, 허 참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있어",하면서 전투개시 모드로 돌입.
모처럼 촉촉해진 감성에 웬 날벼락, 정체된 줄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와 영화감상에 대한 미련은 포기하고 사람들이 잠잠해지면 밖으로
나오려고 기다리는데,대부분 영화의 상영시간이 되었는지 어느새
주위가 조용하고 발권하는 아가씨와 우리 두사람만 텅빈 대기실에
있는 느낌에 조용히 카운터로 가서 "지금 바로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느냐"고 1%의 기대도 없이 질문하니,"방금 캔설한 '수상한 그녀'
커플석 두자리가 있다"는 대답과 동시에 "교환 환불은 안됩니다."
라는 반가운 소리. 당근이지, 오후 2시40분 상영영화 2시41분
발권하는 기분. 역시 인생은 기다림이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차리고 먹히기 전까지 기다리는게 최선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좋아하는 노래 채은옥의 '빗물'을 젊은 배우 심은경이 얼마나 잘
부르는지, 나문희여사의 연기는 대사 한마디 몸짓하나까지 우리
어머님의 일상을 흡사하게 떠올리게 하는지,
오랫만에 좋은 작품 감상하고 호강시킨 눈에 습기가 가득 차더니만
결국 그렁그렁 눈물방울 되어 주책없이 흘러내리니,호르몬 때문이야,
호르몬, 자꾸만 남성호르몬 부족으로 아무데서나 징징 울어대니
허허 나원 참.

연휴 세째날 오늘은 온통 하늘색이 잔뜩 찌부린게 비나 눈이 금방
쏟아질것 같았다. 그래도 오랫만에 추억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관으로 장모님까지 모시고 출발.
그러고 보니 안선생이 단색화전을 한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가는데 그
이후 처음 과천을 방문하게 되다니 세월 한 번 징하게 빨라부러.
미술관에 도착하니 운치있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나선형계단을 올라
제1전시실부터 제6전시실까지 모두 섭렵하는데 세시간 정도
소요되었다.중국,인도 현대 미술전 '풍경의 귀환'도 보고,권진규와
김정숙의 조각작품도 보고,특히 내가 좋아하는 제일동포 건축과
이타미 준의 '바람의 조형'전은 나의 발걸음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다.
한국이름 유동룡이기도 한 작가는 끝까지 한국인임을 포기하지 않는
제일교포 작가로서 유년시절을 보낸 시즈오카의 바다와 바람을 평생
잊지 못하고, 제2의 고향이자 닮은 꼴 바다 인 제주도에서 바다와 바
람이 만나는 곳에 그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함으로서 가슴에 품었던 평
생 작업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수,풍,석 미술관과 하늘의 교회,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포도호텔
등 그의 흔적만으로도 제주도 건축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윈 겨울비를 맞으며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 오는길,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지만 삼일에 걸친 국립미술관순례는 이번
한해가 또 다시 힘들더라도 버틸 수 있는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 임
을 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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