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스페인을 다녀와서....(2)
번호 : 22 작성자 : 김광연 작성일 : 2015-12-06 조회수 : 1937

이튿날, 어제 출발 때부터 속이 거북하여 걱정했던 거제 박은미지사장
님이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나타나 안도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남쪽으로 7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 톨레도로 향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작은 소도시에 불과 하지만 16세기 중반 필리페 2세가
마드릿으로 수도를 옮길때까지, 로마가 멸망한 뒤부터 오랬동안
이슬람과 기독교 국가의 중심지로서 역할를 하였던 고도(古都)입니
다.
특히 에스파냐의 대주교좌 성당인 톨레도 대성당은 언덕 위에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관계로, 다른 건물들이 가까이 접근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웅장한 전체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모습은 큰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으며, 십자가가
크로스 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중앙제단과 성가대석이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순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제단과 뒷벽의 장식, 높은 벽체
와 지극히 정교한 조각, 창문의 다양한 색상과 문양의모자이크 등
자그마치 3세기에 걸쳐 지어진 건물답게 중세 건축의 백미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20센트를 넣으면 작은 전자식 촛불에 자동 점등이 되도록 된 미니
제단이 준비되어 있어서 얼른 동전을 넣고 우리 모든 일행들의 여행
중 안전을 기원하는 화살기도를 올리고 성당을 빠져 나왔습니다.

다시 마드릿으로 가서 프라도미술관을 관람하는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발 하였습니다.
우리 모든 땡이가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채 1시간도 안되는 관람시간을 책정해 놓았기에, 델, 솔광장 방문과
기타 자유시간을 포기하고 저희는 더 관람하겠다고, 버스만 약속된
시간에 보내 달라고 하였으나, 그것마저 사고의 위험과 기타 사유로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저녁식사 장소로 제가 책임지고 택시 여러 대에 나눠타고
개별적으로 가겠다고 버티니, 현지 가이드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일정 중에 여행사에서 지정한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쇼
핑센터를 방문하는 코스가 있는데,커미션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에
패키지 상품의 특성상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 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인솔자의 중재로 기사 팁을 추가로 주기로 하고, 또한 저를
포함한 18명 우리 가족 전체의 안전과 어떠한 불상사에 대하여서도
여행사와 인솔자, 그리고 현지 가이드에게 책임을 묻지 안는다는
유치한 각서에 서명 날인 한 후에야 가까스로 2시간의 관람시간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라도 미술관 앞에서, 현지 가이드(스페인에서는 현지
가이드가 있어야 어디에서나 단체 외래관광객이 입장가능함)가
도착하지 않은 관계로 입장을 하지 못하고 결국 쇼핑센터로 먼저
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고국을 떠나
타국만리에서 저처럼 머리 희끗희끗 휘날리며 먹고 살려고 애써는
모습이 안쓰러워 묵언하고, 뭔가 하나라도 구매해주면 그분에게
조금이라도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뭔가 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신발은 맞는 사이즈가 없고 다른 상품들은 취향이
아니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안선생이 13.5유로짜리 안경집을 그것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을 고민고민 끝에 사고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행히 우리 땡이가족들이 통 큰 구매를 해주어서 현지 가이드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 듯 하였습니다.

고야의 동상이 있는 정문을 통하여 입장하여 ,고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등 많은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우여곡절 끝에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대표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특별전
까지 관람하고 미술관을 나오니 어느 덧 객지에서 여행자가 가장
집이 그리워지는 저녁 시간이 되어, 바르셀로나 시민들도 바쁜
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마드리드의 마지막 밤이 아쉬웠지만, 내일 부터
시작되는 강행군을 생각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로테>의 배경인 풍차마을,
꼰수에그라로 이동하여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하고 싸운 11개의
하얀 풍차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후에 서양속의 동양이라 불리는
꼬르도바로 이동하였습니다.

이슬람 전통 양식의 기둥위에 카톨릭식 양식을 덧대어 건물을 완성한
메스키타 사원을 둘러보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대인들의
거주지와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에 박차를 가하던 이사벨여왕이
머물렀고, 신대륙 탐험을 계획하던 콜럼버스가 찾아와 자신의 게획을
설명하던 카톨릭 군주들의 성도 둘러 보았습니다.
석식후 안달루시아 주의 수도이자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로 이동하여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다음 날 ,주말을 맞아 조용한 세비야의 아침 거리를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둘러 보았습니다.
세비아는 유명한 오페라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짚시여인 카르멘을 사랑한 호세는 투우사 에스카밀료에게 마음을
빼앗긴 카르멘에게 절망하여 투우장에서 그녀를 칼로 찌르고 자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 <카르멘>을 비롯하여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모짜르트의의 <피가로의 결혼>을 비롯하여 하이든이
모짜르트의 작품 중 최고라고 평가한 작품<돈 조반니>의 무대도
바로 여기이므로 세비야를 오페라의 고향이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는 곳 입니다.

세비야 대성당 또한 톨레도 대성당 못지 않은 순금으로 장식한
화려함과 웅장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과 함께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 중의 하나라고 하니, 당시에도 성직자나 군주들의 큰
성당이나, 성을 짓고 싶어하는 허영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반백성들
이 피와 땀을 흘려야 하는 고통을 감내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
지를 않습니다. 한편으론 후손들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그런
건축물 덕분에 관광수입으로 연명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니
예기치 않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졌습니다.
세비야 성당에 들어가기 위하여 줄을 서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예전에 수원 장안지사를 운영 하였던 박혜서지사
장이 지금 여기에서 현지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5대양 6대주에 걸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좀 전에 스페인 광장에서 그쪽 손님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몰래 엿들었고, 얼굴을 보고 단번에 알아 보았으나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민하다가 아는 체를 하지 않았고 짠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 왔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히랄탑이 있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꽤 높은 층 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와서, 중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계곡에 세워진 도시
론다로 길을 재촉 하였습니다.
금일의 일정은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 그라나다까지 이동하여
알함브라궁전 야간 투어까지 마쳐야 종료되기 때문에 서둘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론다는 대형버스가 정차 할 만한 큰 도로가 없어서 우리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 버스를 정차하고, 화장실을 들렀다가(화장실만
있으면 의무적으로 가야함)구시가지에 위치한 스페인 최초의 론다
투우장과 계곡을 가로질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론다교를
보러 가다가 드디어 첫번째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인솔자 최선생께서 항상 숫자 파악에 애를 써는 데 "이렇게 사진
많이 찍고, 어디에든 내렸다 하면 행군장경(군대용어로 걸어갈 때
제일 앞에 사람과 맨 뒤사람과의 거리)이 쭈ㅡ욱 길게 늘어지는 팀은
처음 본다"고 저한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여,제가 우리가족 전부
아이들 미술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아이들처럼 유난히 호기심
이 많고,또한 교육을 위한 여러가지 자료도 수집해야 하며, 아이들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 좋은 것, 신기한 것, 멋진 것, 훌륭한
색감.. 이런 것들을 보면 차마 그냥 못 지나가니 이해해주십사
양해를 구하고, 대신 제가 우리 일행 맨 뒤에서 주로 우리 가족들을
독려하여 앞으로 당겨 가도록 하고, 길을 잃지 않도록 유도하며 가고
있었는데, 우리 행렬 사이에 낀 좀도둑이 유성/대덕 남의연 지사장의
외투 바깥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스마트폰을 날치기하여
달아나버린 것이었습니다.
3인1조의 도둑들에 대하여 뒤늦게 알아챈 본인과 일행들, 특히 우리
아들 녀석이 젊은 혈기에 흥분하여 따라가고 난리를 쳤지만 이미
우리를 관찰하고 따라오면서 훔칠 물건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담하게 손을 집어 빼낸 대담함을 보면, 상습범들이며
다른 한놈이 훔친 폰을 건네 받아 가지고 이미 다른 길로 가버리고
빼낸 놈은 증거물없이 다른 놈과 유유히 씨씨덕거리며 가고 있는터라,
이미 끝난 게임이었습니다.
에스파냐 땅에 발을 딛기 전부터 그렇게 강조하고, 인솔자 가이드
모두가 주의하라고 일렀지만 결국은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리더의 부족함에 화도 나고, 당했다는 자책감에
분하기도 하였지만,지사장께서 "바꾸려고 했던 오래된 폰이라
괜잖다"고 오히려 다른 일행들을 위로하여, 조금은 상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꽃보다 할배'때문에 더 유명해진 론다에서 안좋은 추억만 남긴채
카페에서의 짧은 시간, 생맥주 한잔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고
그라나다를 향하여 남으로 남으로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려 갔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 둥 마는둥 급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알함브라 궁전 야간투어를 위하여 그라나다(우리말로'석류'라는 의미)
시내로 향하였습니다. 개인투어로 오는 분들이 대부분 일찍 예약을
하지 못하여 궁전 내부의 속살을 보지 못하고 외형만 보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패키지를 할 경우 회사에서 통상 일주일 전에 끝나는
예약(하루에 한정된 인원만 입장가능:보존을 위하여)을 미리 해두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패키지 여행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습니
다. 그 점에 관하여 현지 가이드께서 "여러분은 행운이라"고 애둘러
여러번 생색을 내었지만 기분좋게 수긍하였습니다.

8세기 초에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슬람교도는 10세기부터 무려
100년간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였습니다. 번영기에 알 안달루스
왕조는 칼리프의 통제아래 통일왕조를 이루어 이베리아 뿐만 아니라
피레네산맥 너머 프랑스땅 일부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역사상 영원한 왕조가 없듯이 이 왕조도 11세기 말 쇠퇴기에 접어
들면서 이베리아 반도 전체는 소왕국들로 분열되었고, 카톨릭 세력의
남진정책에 의하여 1085년 톨레도가 함락되었고, 1236년에는 코르도바
까지 카톨릭 세력에 의하여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반도 남부의 나스리드 왕조만이 유일한 이베리아의 이슬람
왕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라나다는 나스리드 왕조의 수도이며, 시가지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있는 알함브라는 그들의 궁전이자, 파라다이스 그리고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요새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나 온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와 함께 에스파냐의 가장 유명한
이슬람 유적이기도 한 곳입니다.
다음 날 오전까지 궁전의 내부 여기저기를 꼼꼼히 둘러보고, 그라나다
시내에서 중식을 마치고는, 며칠간 정 들었던 현지 가이드 김선생과
짧은 만남, 긴 이별을 하였습니다. 이십여년전에 고국에서 선생님
을 하셨던 분이라고 하는데 멀리 이곳까지 오셔서 이것저것 시도하다
가 실패하시고,스페인 여행 열풍에 가이드로 나서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세비야에서 '플라맹고'옵션을 강요하는 듯한 조금 오버하는 멘트만
하지 않았더라도 수고비를 좀 주려고 봉투에 넣어 두었다가,
생략하였습니다.
몬세라트로 떠나는 저희들 일행을 향하여, 차장 밖에 선채로 캐리어
를 옆에두고 통 넓은 바지를 추스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잠깐
코 끝이 찡 하였습니다.

김선생님!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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